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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알뜨르 비행장 – 숨겨진 역사와 묵직한 풍경을 느끼며 걷다.

📑 목차

     바람과 콘크리트가 함께 남긴 제주 서남부의 거대한 흔적

    제주 서남부 모슬포 일대는 바람의 속도가 강하고 땅의 결이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이곳에 자리한 알뜨르 비행장은 단순한 폐비행장이 아니라, 제주가 지닌 역사의 가장 어두운 층위와 함께 섬 지형의 드넓은 풍경이 겹쳐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알뜨르는 제주 방언으로 ‘아랫들’을 의미하며, 말 그대로 너른 들판이 바다 방향으로 낮게 펼쳐진 지형을 가리킨다. 이 공간은 현재 아무런 활주 장비가 없는 자연형 폐비행장처럼 보이지만, 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과거 군사 시설의 흔적이 굳게 박혀 있다.

    활주로의 콘크리트 잔재, 격납고로 사용된 동굴형 진지동굴, 탄약 저장 시설, 방공호 등이 들판 사이에 점처럼 흩어져 있으며, 일부 시설은 지금도 당시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강한 바람과 탁 트인 하늘, 그리고 거의 소리가 없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알뜨르 풍경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제주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묵직한 풍경을 지닌 장소를 찾는다면, 알뜨르 비행장은 그 중심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 알뜨르 비행장의 형성 – 땅의 구조가 만든 군사적 공간

    알뜨르는 지형 자체가 비행장으로 활용되기 적합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고, 지면이 평탄하며, 지형 경사가 거의 없는 드넓은 평지가 이어져 있어 활주로나 격납고를 설치하기 유리했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동안 군사 전략의 핵심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일본군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비행장 건설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공사는 단순히 토목 작업이 아니라 강제노역이 바탕이 되어 진행되었기 때문에 지역 사회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비행장 건설 과정에서 콘크리트 활주로, 대형 격납고, 연료 저장고, 벙커, 진지동굴 등 다양한 구조물이 설치되었으며, 이 구조물들은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알뜨르 일대를 일종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처럼 느껴지게 한다.


    2. 알뜨르 비행장이 당시 지닌 목적과 역할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 남부와 동중국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관측 거점 역할을 맡았다.
    군사 기록을 통해 당시 이 비행장이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졌음이 확인된다.

    ① 태평양 전쟁 후반기의 항공 출격 기지

    일본군은 알뜨르 비행장을 최전선 보급기지처럼 활용하여 전투기와 폭격기의 이동을 지원했다.

    ② 해상 감시의 중심지

    제주 남부 해역은 항로가 중요했기 때문에 군사 감시가 매우 중요했고, 알뜨르는 그 거점을 담당했다.

    ③ 특별한 활주로 구조

    활주로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어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크기의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구조 덕분에 지금도 알뜨르 비행장의 지면 형태는 제주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직선 패턴을 유지한다.


    3. 알뜨르의 격납고와 진지동굴 – 땅속에 남은 전쟁의 흔적

    알뜨르에는 격납고와 진지동굴이 매우 많이 분포되어 있다. 제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규모다.

    ▶ 동굴형 격납고의 특징

    • 내부 공간이 반원형으로 깊다
    • 천장이 낮고 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는다
    • 입구가 좁아 방어가 쉬운 구조다
    • 외부에서 보면 언덕처럼 보여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

    제주 다른 지역에서도 일본군 진지는 존재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 집중된 곳은 알뜨르뿐이다.

    ▶ 진지동굴의 특이점

    일부 동굴은 내부 길이가 50m 이상으로 이어지며, 통로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돌과 콘크리트가 층을 이루며 굳어 있는 모습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4. 알뜨르 비행장의 현재 풍경이 주는 감정적 구조

    알뜨르를 걷다 보면 공간 자체가 가진 ‘묵직한 침묵’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
    바람 소리 외에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주변에 건물도 많지 않아 시야가 크게 열린다.

    현재 알뜨르 풍경이 가지는 특징

    • 활주로의 직선이 넓은 하늘과 맞물려 독특한 균형을 만든다
    • 억새가 활주로 끝까지 이어져 바람의 흐름이 눈으로 보인다
    • 동굴 격납고의 그림자가 햇빛의 각도에 따라 형태를 달리한다
    • 들판의 낮은 지형 덕분에 하늘의 비율이 매우 크다

    현대적 시설과 자연이 섞이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에, 알뜨르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처럼 느껴진다.


    5. 알뜨르 비행장 주변 명소와 함께 걷는 역사 산책루트

    ① 알뜨르 활주로 중심 산책

    활주로가 길게 이어져 있어 걷는 동안 풍경의 밀도가 일정하다.
    바람 방향이 계절에 따라 바뀌는데, 따뜻한 계절에는 남서풍이 들판 위로 부드럽게 지나간다.

    ② 진지동굴 탐방 루트

    진지동굴이 여러 군데 분포되어 있어 동굴 앞에서 드넓은 들판과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독특한 장면이 펼쳐진다.

    ③ 모슬포 항 – 알뜨르까지 연결되는 옛 해상 루트

    모슬포는 과거 일본군 해상 이동의 거점이었는데, 이 항구를 거쳐 알뜨르로 이어지는 지형 구조를 따라 걸어보면 당시 공간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6. 알뜨르 방문의 최적 시간과 계절별 풍경 변화

    들판의 초록빛이 서서히 확산되며 활주로와 대비되어 선명한 색감을 만든다.

    여름

    바람이 강하고 하늘이 높아 활주로의 직선과 수평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을

    억새가 활주로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며 빛의 결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겨울

    하늘이 맑고 사진의 대비가 뚜렷해지며 공간의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7. 알뜨르 비행장이 기억해야 하는 이유

    알뜨르는 단순한 전쟁 유적지가 아니다.
    역사적 상처가 남았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자연이 조용히 품어 안으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공간이다.

    알뜨르의 가치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제주 지형과 전쟁 역사의 교차점
    2. 거대한 평지와 활주로가 만드는 독특한 공간미
    3. 자연·바람·빛이 조용하게 남긴 기억의 현장

    알뜨르는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 풍경을 바꾸지 않고 지켜온 공간이기 때문에 제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결론 – 알뜨르 비행장이 남긴 침묵의 깊이

    제주 알뜨르 비행장은 아무런 장식 없이 땅과 바람, 콘크리트 잔재만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들판은 끝없이 펼쳐지고, 하늘은 크게 열려 있으며, 남아 있는 동굴과 활주로는 과거의 이야기를 조용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많은 관광지가 화려함을 강조하는 시대이지만, 알뜨르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바람의 소리만으로 풍경의 깊이를 완성하는 곳이다.
    제주 여행에서 조용한 감정, 깊은 생각, 그리고 묵직한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다면 알뜨르 비행장은 가장 특별한 장소가 되어준다.

     

    알뜨르 비행장